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실 이름 짓던 에피소드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 이름은 이한새입니다.

 

순우리말로 ‘한새’는 큰 새라는 뜻이에요.


좋은 뜻이죠. 겁나 크고, 넓고, 자유롭고, 뭔가 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 같고...

큰새

 

문제는 제 인생의 시작이 ‘큰 새’가 아니라 ‘참새’였다는 겁니다.

 

어릴 때 어른들은 저를 이렇게 불렀어요.

 

“참새야.”


“깨비야.”


“아이고, 우리 참새.”

 

나야나 참새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어른들이 부르면 다 애칭인 줄 알잖아요. 참새든 깨비든, 일단 귀여운 쪽인 줄 알았어요.

 

문제는 아이들이 크고 나서 시작됐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냥 참새였습니다.


작고 귀엽고, 뭔가 부스러기 주워 먹을 것 같은 새.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아이들이 ‘새끼’라는 단어의 활용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쯤에서 사전을 한번 봅니다.

 

새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짐승
  2. ‘자식’을 낮잡아 이르는 말
  3. 속되게 어떤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

그렇다면 친구들이 저를 “참새 새끼”라고 부른 건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요.

 

1번. 어린 새처럼 보인 건가.


2번. 새 자식을 낮잡아 부른 건가.


3번. 그냥 새새끼라고 욕하고 싶었던 건가.

 

1번 의미였다면 이건 긍정적인 걸까요?

 

 

 

아무튼 처음 시작은 참새 새끼였습니다.

 

그다음엔 참새끼가 됐고요.

 

요즘 애들만 줄임말에 진심인 줄 알았는데, 그때 아이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참새 새끼를 참새끼로 줄이는 걸 보면, 거의 국어 압축 알고리즘의 초기 버전이었어요.

 

 

문제는 압축률은 좋았는데, 결과물이 욕처럼 들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참새끼.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거든요.

 

아마 어느 순간 아이들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 이건 합성어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구나.”

 

그리고 별명은 다시 정리됐습니다.

 

참새끼가 아니라,


새새끼.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압축률이 제일 높은 ‘새끼’가 되지 않았는지는 의아합니다.


그 정도의 배려는 있었던 걸까요.

 

제 이름은 이한새인데, 어느 순간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 마리의 새새끼’ 정도로 해석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국어 능력 향상이 오히려 공격력을 높이는 구조가 된 겁니다.

 

성장은 아이들이 했는데, 피해는 제가 봤습니다.

 

귀여운 조류 애칭에서 갑자기 욕설 직전의 언어유희로 넘어간 겁니다.


이때부터 알았습니다.

 

아, 이 이름은 평범하게 지나가긴 어렵겠구나.

 

그리고 중학생쯤 되니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의 어두운 단어들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비속어의 세계에 눈을 뜬 거죠.

 

그러자 참새는 자연스럽게 짭새가 됐습니다.

 

 

참새에서 짭새.


한 글자 차이인데 인생의 장르가 바뀌었어요.

 

동요에서 범죄영화로 넘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받아쓰기 꼴등하던 내가 경찰이라니.

 

시험도 안 봤는데 갑자기 공권력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짜바리도 추가됐어요.


짜바리는 짭새를 다르게 부르는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참새에서 짭새가 되고,


짭새에서 짜바리가 된 겁니다.

 

조류도감으로 시작한 이름이 어느 순간 은어사전으로 넘어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자, 시대가 저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합성짤이 한창 돌던 시절이었어요.


인터넷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한 이미지들이 생겨났고, 친구들은 그걸 매우 성실하게 저장하고 공유했습니다.

 

그중에 개랑 새를 합친 짤이 있었어요.

 

일명, 개새 짤

개새

 

어느 날 보니 저는 그냥 새도 아니고, 참새도 아니고, 짭새도 아니고, 개새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술의 발달이 꼭 인류를 좋은 방향으로만 이끄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렇게 제 이름은 성장했습니다.

 

참새에서 시작해, 참새끼가 되고, 짭새가 되고, 짜바리가 되고, 마침내 개새까지.

 

새 하나로 가능한 변주는 거의 다 겪은 셈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제 이름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놀림은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제 이름은 누구나 기억했어요.

 

처음 만난 사람도 “한새?” 하고 한 번 더 물었고,


한번 들은 사람은 꽤 오래 기억했습니다.

 

그게 놀림이든 호기심이든, 제 이름은 늘 사람들 머릿속에 남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이름이 불편하면서도 좋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이름은 이미 작은 브랜드 같았거든요.


아직 브랜드 전략은 없었고, 피해 사례만 있었지만요.

그런데 여기서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실 이름 짓는 이야기라더니,


왜 갑자기 별명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냐고요?

 

그러게요.

 

저도 쓰다 보니 참새에서 개새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제가 사무실 이름을 지을 때도,


모든 시작은 제 이름이었거든요.

 

놀림도 제 이름에서 시작됐고,


기억되는 것도 제 이름에서 시작됐고,


사무실 이름도 결국 제 이름에서 시작됐습니다.

 

근데 여기까지 쓰니 너무 힘드네요.

 

사무실 이름 이야기를 하겠다고 시작해놓고,


정작 할 말은 안 하고 별명 이야기만 하다가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괜찮아요.

 

이건 그냥 저 혼자 떠드는 잡소리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이름 짓기 전에 지반조사 한 번 한 셈으로 칩시다.

 

제 이름의 지반은 참새에서 시작해 개새까지 이어지는,


꽤 험난한 지층이었거든요.

 

다음 글에서는 진짜로 사무실 이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마도요.

 

 

나무가 사방에 있는데, 나무를 모르는 동네에 짓는 건물

봉화솔향센터 설계 이야기 · 오비에이 건축사사무소

 

공모 서류를 처음 받았을 때, 봉화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봤어요. 설계가 늘 멋진 스케치와 영감으로 시작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지도 검색과 지침서 정독으로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낭만은 생각보다 늦게 와요.

 

 

 


나무가 사방에 있는데, 나무를 모르는 동네

지침서를 읽다 보니 봉화는 나무와 아주 가까운 동네였어요. 숲이 많고, 목재친화도시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춘양목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나무를 가까이 경험할 기회는 많지 않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봉화군은 전체 면적의 83%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목재친화도시이지만,

정작 봉화읍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나무를 가까이할 기회는 거의 없다."

                                                              -봉화솔향센터 건립공사 설계공모 지침서-

 

봉화는 나무가 없는 동네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 동네였어요. 문제는 나무의 양이 아니라 거리감이었습니다. 빵집 바로 옆에 사는데, 매일 빵 냄새만 맡고 정작 빵은 못 먹는 느낌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솔향센터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쓴 건물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무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나무를 다시 느끼게 하는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혼자 서 있으면 이상한 땅이었어요

 

012
대상지 현황

 

대지는 북쪽의 군민행복센터와 남쪽의 마을 골목 사이에 있었어요.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고, 생활의 흐름과 공공시설의 흐름이 겹치는 자리였죠. 처음엔 복잡해 보였어요. 들어오는 길이 많다는 건 좋은 조건이지만, 잘못 풀면 모두가 어딘가로 들어오긴 하는데 어디가 시작인지 모르는 상황이 되기 쉽거든요. 공공건축에서 첫인상이 "입구가 어디죠?"가 되면 조금 곤란합니다.

 

대지현황분석

 

그래서 이 건물은 대지 위에 혼자 멋있게 서 있는 오브제가 아니라, 주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한 번 엮어주는 장소가 되어야 했어요. 사람들이 마음먹고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다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곳. 그게 이 대지에 더 맞는 방식이라고 봤습니다.

 

 

 


봉화 사람한테 나무를 설명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역을 보고, 대지를 보니 방향이 조금 선명해졌어요. 이 건물은 "봉화에는 나무가 많습니다"라고 설명하는 목재 전시장이면 안 됐습니다. 그건 봉화가 이미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나무를 어떻게 느끼느냐였어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걸으면서 질감을 느끼고, 공기 안의 향을 맡고, 공간 안에서 머무르며 몸으로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혼자만의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 것.

나무를 느끼는 동안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고,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자연스럽게 얽히는 장면이 필요했어요. 결국 이 프로젝트는 나무와 사람이 친해지고,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숲 사이, 삶 사이

그래서 나온 개념이 '숲 사이, 삶 사이 — 나무로 이어지는 관계의 공간'이었어요.

건축가들이 컨셉 이름 지을 때 좀 이렇게 됩니다. 어쩔 수 없어요. 근데 이번엔 이름값을 했어요. 숲은 봉화의 자연이고, 삶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니까요. 그리고 그 사이가 이 프로젝트가 해야 할 일이었어요.

CONCEPT

순서가 중요해요. 건물을 먼저 짓고 나무를 심은 게 아니에요. 숲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 건물을 뒀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로 길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걷다가 그늘 아래 잠깐 멈추고, 향을 맡고, 결을 만지고. 그러다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목공방도, 다목적홀도, 솔향 스퀘어도  다 그 숲 안에 끼어 있어요.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계속 나무를 통과하는 구조예요. 숲이 배경이 아니라 동선이 되는 거예요. 그 동선 안에서 만남이 일어나고, 나무와도 조금씩 친해지는.

 

 

 


스케치 수십 장의 결말

물론 컨셉 문장을 정했다고 해서 배치가 저절로 나오진 않아요. 그랬으면 설계는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운 일이었을 거예요.

처음에는 목재를 강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인 형태도 생각했고, 프로그램을 또렷하게 나누는 방식도 검토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할수록 설명은 잘 되는데, 막상 편하게 들어가기는 어려운 공간이 되더라고요.

 

좋은 건축인 건 알겠는데, 내가 왜 거길 가지.

 

이 질문이 남는 순간은 좀 위험합니다. 공공건축은 이해시키는 것보다 먼저, 들어가고 싶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기준을 다시 잡았어요. 형태보다 경험, 건물보다 장면.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오고, 어디서 멈추고, 무엇을 느끼고, 누구와 마주치는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평면을 보면 이 건물의 성격이 보여요

1층 평면은 생각보다 단순해요. 크게 세 덩어리예요. 서쪽의 다목적홀, 가운데 솔향 스퀘어, 동쪽의 목공방.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공용 공간과 동선이 채웁니다.

복잡하게 나눠진 공간이 없어요. 대신 가변형 벽체로 상황에 따라 합치거나 나눌 수 있게 했어요. 컨퍼런스가 있으면 다목적홀만 쓰고, 마을 행사가 있으면 스퀘어까지 열어서 쓰고, 큰 행사엔 공방까지 터서 전체를 하나로 쓸 수 있는 구조예요.

평면이 유연하다는 건 결국 이 공간이 하나의 용도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월요일엔 목공 체험 공간이고, 주말엔 마을 잔치 공간이고, 어떤 날엔 그냥 지나가다 잠깐 앉는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목적 없는 공간이 제일 중요했어요

배치의 중심에는 열린 마당인 솔향 스퀘어를 두었어요. 여러 방향에서 들어온 흐름이 이곳에서 한 번 모이고, 다시 다목적홀, 목공방, 정원, 루프탑으로 퍼져나가는 구조입니다.

 

솔향스퀘어

 

솔향 스퀘어는 입구이면서 마당이고, 로비이면서 쉼터예요. 역할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공공건축에서 이런 애매한 공간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뭐 해요?"라는 질문에 "그냥 있어도 되는 공간이요"라고 대답해야 하거든요. 납득시키기 제일 어려운 공간이 사실 제일 필요한 공간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서 나무는 장식이 아니라 일을 해요

 

솔향 스퀘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가, 안으로 들어오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목구조예요. 기둥과 보는 마감 뒤에 숨지 않고 그대로 드러납니다. 밖에서는 나무 사이를 걸었다면, 안에서는 나무가 머리 위를 덮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나무는 장식이 아니라, 건물을 실제로 서 있게 하는 구조예요. 나무처럼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진짜 나무가 버티고 있는 공간. 이 차이가 중요했습니다.

다목적홀은 이 건물에서 가장 큰 공간이에요. 천장까지 열린 목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죠. 컨퍼런스도 가능해야 하고, 마을 행사도 담아야 하고, 전시도 열 수 있어야 했어요. 이런 공간은 잘 만들면 유연한 공간이고, 잘못 만들면 그냥 큰 방이 됩니다.

답은 가변형 벽체였어요. 상황에 따라 합치거나 나눌 수 있어요. 작은 세미나엔 아늑하게 조이고, 마을 잔치엔 활짝 열고. 행사 내용은 바뀌어도, 머리 위 나무 구조는 항상 거기 있어요.

01
다목적홀 내부


 

 

 

 

공방 쪽으로 가면, 나무가 조금 시끄러워집니다

목공방은 나무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공간이에요. 손으로 만지고, 깎고, 다듬고, 냄새를 맡고, 소리로 듣는 곳이죠.

목공은 이미지로 보면 꽤 조용하고 감성적이에요. 햇빛 좋은 오후, 나무결, 손작업. 그런데 실제로는 전동공구도 돌고, 집진기도 켜지고, 톱밥도 날립니다. 감성도 있지만 소음도 확실해요.

그래서 공방은 적절히 분리하되, 완전히 숨기지는 않았어요. 지나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저기서 뭐 하지?" 하고 궁금해지는 정도의 열림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공방내부이미지

 

 

 

 


없어진 놀이터는 위로 올라갔어요

이 대지에는 원래 동네 아이들이 쓰던 놀이터가 있었어요. 솔향센터를 짓는다는 건, 그 놀이터의 자리를 바꾸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게 좀 찝찝했어요. 봉화는 인구가 줄고 있는 동네예요. 그 와중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을 없애고 문화시설을 짓는다는 게 지침서 어디에도 그 얘기는 없었지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없애는 대신 위로 올리기로 했어요. 지붕 위에 루프탑 플레이그라운드를 두고, 이 장소의 기억을 그대로 이어가게 한 거죠.

 

여기서 아이들은 나무를 몸으로 만나게 됩니다. 뛰고, 오르고, 미끄러지고, 만지면서요. 말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놀이시설 일부는 아래 목공방과 연결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장면도 상상했어요. 동네 어른들이 손으로 만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장면. 이 프로젝트가 말하려던 관계가 가장 쉽게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옥상 플레이그라운드

 

 

 

 


나무는 예쁘지만, 생각보다 예민합니다

이 건물은 중목구조를 기본으로 생각했어요. 굵은 목재 기둥과 보가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라, 실내에 들어왔을 때 나무의 질감과 구조감이 함께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다만 나무는 예쁘기만 한 재료는 아니에요. 습기와 디테일 앞에서는 꽤 솔직합니다. 대충 하면 바로 티가 나요. 나무는 모른 척을 잘 안 해줍니다.  그래서 하부는 콘크리트로 안정적으로 잡고, 상부는 목재로 전환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생각했어요. 콘크리트는 버티는 데 강하고, 목재는 구조와 분위기를 함께 만들기에 좋으니까요.

 

지붕의 곡선도 단지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조와 태양광 패널, 자연환기 같은 환경 조건을 함께 보면서 나온 형태였어요. 결과적으로는 부드러운 실루엣이 됐지만, 출발은 꽤 현실적인 판단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완공이 끝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관리가 필요하고, 손을 봐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 역할을 외부 업체가 아니라 목공방에서 이어가는 걸 생각했어요. 건물을 짓고 나서도 지역 기술자와 주민들이 함께 관리하는 구조예요. 만들면서, 쓰면서, 고치면서  봉화 사람들이 이 건물을 계속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요.


설계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반복했어요

내가 봉화 사람이면 이 공간에 올까?

 

 

행사가 있어서 한 번 들르고 끝나는 곳 말고, 그냥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 거기 가면 나무를 보고, 만지고, 향을 맡고, 누군가를 마주치고, 잠깐 머물 수 있는 곳.

봉화 솔향센터는 나무를 설명하는 건물이 아니라, 나무와 친해지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끼리도 조금씩 친해지는 공간이요.

숲은 원래 가까이 있었지만, 건축은 그 숲의 감각을 삶 가까이 끌어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그 사이를 한 번 이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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